비디오 플레이어 처음 써봤던 그 시절 이야기

비디오 플레이어 처음 써봤던 그 시절 이야기를 좀 해보려합니다.

어릴때 저희집은 비디오가 없어서 비디오가 있는 동네 친구들의 집에 가서 영화를 봐야했었습니다.

그때는 티비에서 해주는 주말의 영화나 토요명화가 아니면 인기 있는 영화를 볼 수 있는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신문을 보면서 이번주 토요일엔 어떤 영화를 하는지 체크해보고 재밌는 게 하면 티비 앞에서 영화가 하기만을 기다리던 시절이었습니다.

국민학교에 다닐땐 그렇게 영화를 티비로 보거나 아는 동생네 집에까지 가서 그때 유행하던 후레쉬맨, 바이오맨, 스필반 같은 전대물을 보곤 했습니다.

중학교에 올라갈때도 저희집은 비디오 플레이어를 사지 않았는데 아무래도 학생이다보니 비디오에 정신이 팔려서 공부에 소홀해질 것을 염려하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고등학교에 들어갈때도 역시나 비디오는 없었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들어갔는데 대학 도서관 옆에 보니 비디오를 무료로 감상할 수 있는 비디오 감상실이 있길래 대학 동기랑 거길 들어가봤습니다.

학생증을 내고 들어가면 그 안에 있는 비디오 테이프를 빌려서 한쪽에 마련되어 있는 감상실에서 비디오를 볼 수 있는 건데 피씨방처럼 칸칸이 나뉘어진 곳에서 헤드셋을 쓰고 비디오를 다들 감상하고 있어서 저도 마침 유명한 영화였던 매트릭스1을 빌려서 자리에 앉았습니다.

자리에 앉긴 했으나 비디오를 어떻게 켜는지 몰라서 약간 헤매다가 옆에 있는 동기녀석에게 이거 어떻게 플레이하는거냐고 물어보고 그 친구가 도와줘서 매트릭스라는 영화를 처음 보게 되었습니다.

그때 비디오로 봤던 매트릭스는 너무나도 신비로운 영화였고 이야기가 재밌어서 한순간도 놓치지 못하고 엄청나게 몰입해서 영화를 봤던 기억이 납니다.

이후 술약속 시간이 다 되어 영화를 끝까지 감상하진 못하고 중간에 나와야했었는데 비디오라는 게 이렇게 좋은거구나 그때 알게 되었습니다.

이후 아부지에게 우리도 비디오를 좀 사자고 지금은 많이 싸다고 졸랐더니 아부지가 어디에서 비디오 플레이어를 하나 얻어오셨는데 그때부터는 제 인생에서 영화를 가장 많이 봤었던 시기가 펼쳐지게 됩니다.

비디오 대여점

90년대부터 2000년대 후반까지 동네에는 책 대여점과 함께 비디오 대여점이 여러곳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전에는 저도 책 대여점에서 무협지나 판타지소설을 200~300원정도 내고 빌려봤었는데 비디오 플레이어가 생기고 난 이후부터는 비디오도 엄청나게 많이 빌려보기 시작했습니다.

잘 기억이 나진 않지만 보통 비디오 대여료는 500~1,000원정도 했던 것 같고 최신작은 2,000원까지도 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나중에서는 많이 올랐었는데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가격이 꽤 저렴해서 돈이 생기면 책이랑 비디오 테이프를 빌려서 잔뜩 쌓아두고 보곤 했었습니다.

비디오 대여점에 가면 누군가 빌려간 테이프는 테이프 곽이 뒤집어서 놓여있었는데 그 전까지 못 봤던 재밌는 영화들이 잔뜩 쌓여있었기 때문에 저는 아무런 걱정도 없었습니다.

신문에서 보고 티비에서 언급만 되던 유명한 영화들이 비디오 대여점에 가면 무수히 많이 쌓여있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외국영화도 엄청 보고 제목만 들어봤던 한국영화도 시간만 나면 수시로 가서 빌려보곤 했습니다.

군대가기 전에 남은 시간을 거의 영화만 보면서 살았다고 해도 될 정도였습니다.

넘버3나 초록물고기처럼 유명 배우들이 테이프 곽에 보이면 일단 빌려가서 봤고 재밌다는 영화도 무조건 한 번씩 다 빌려서 봤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때 봤던 영화들이 참 많았었는데 지금은 기억도 안 나는 작품들이 많지만 가끔 유튜브 쇼츠에 불펌해서 올리는 예전 한국영화 영상들을 보면 그때 봤던 작품들이 종종 보입니다.

불펌러들이 저작권 상관없이 예전 한국영화들 무지하게 많이 올리던데 보면 대부분 그때 봤던 영화들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비디오 플레이어

군대를 가기 전에 영화를 그렇게 많이 보다가 시간이 되어 결국 군대에 끌려갔었고 군대에서도 영화를 보고싶다는 생각은 사그라들지 않았었습니다.

오죽하면 일병 시절 혼자서만 외박을 나와서 그토록 보고싶었던 올드보이를 보고 다시 부대에 복귀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봤던 올드보이는 아직까지도 기억이 납니다.

그렇게 군대를 전역하고 바로 복학을 하지 못해서 붕 뜬 시간이 있었는데 그 1년 남짓한 시간에도 역시나 또 영화를 엄청나게 봤었습니다.

대신 군대를 전역한 이후에는 비디오를 빌려보는 일이 뜸해졌는데 제가 번 돈으로 PC를 구매했었기 때문입니다.

PC를 구매하고 나니 영화도 PC로 볼 수 있게 되어서 그 이후부터는 비디오 대여점에 잘 가지 않게 되었습니다.

비디오로 넘어가면서 그때부터는 영화도 비디오로 보고 게임도 자주 하고 거의 PC앞에서 하루를 다 보내다시피 했었는데 여러 영상 플레이어들을 다운 받아서 영화를 보곤 했었습니다.

지금도 기억나는 건 KM플레이어랑 곰플레이어네요.

최신영화가 올라왔다 하면 바로 영화를 꽉 찬 화면으로 켜놓고 누워서 영화를 보다가 다시 영화가 끝나면 게임을 하고 배가 고프면 라면 하나 끓여먹고 그렇게 한 일주일을 지냈던 적도 있습니다.

그러다가 술 먹자고 연락오면 나가고 술값은 게임해서 번 돈으로 내고 그렇게 살았었는데 그때는 소소하게 월 100만원씩만 벌면서 혼자 이렇게 평생 살아도 행복하겠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던 시절이 있었는데 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을 하게 되고 삭막한 사회생활을 견뎌내다보니 어느덧 나이만 먹고 해놓은 건 없는 늙다리만 남아버렸네요.

그때는 그런 소소한 것에서도 행복을 느꼈었는데 지금은 왜 이리 재밌는 것도 없고 항상 귀찮은 건지 모르겠습니다.

맨날 이 사회를 욕하던 친구들 형들은 다 결혼해서 애들 뒷바라지하면서 열심히 살고있고 술 한 번 먹자고 이야기만 했던 게 3~4년은 지난 것 같은데 다들 잘 살고 있는지도 문득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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